취미/관심 2013. 9. 8. 02:49

√ 지인들과 함께 과천 서울경마공원을 찾았다.

수 년 전에 몇 번 가 보고 정말 오랜만에 경주마 뛰는 모습도 보고 돈도 걸어볼 겸 경마장을 찾았다

돈을 걸지 않으면 숨가쁘게 긴장되고 짜릿한 맛을 경험해 볼 수가 없다. 때문에 이곳에 가면 단돈 오백원이라도 걸어야 경주 보는 맛이 난다. 마권은 100원 단위부터 살 수 있다.

마권을 사는 데는 종류가 몇 가지 있는데, 두마리를 순서 상관없이 맞추는 것이 '복승식'이고 1등 한 마리만 맞추는 것은 '단승식'이라고 한다(승식 예 : 단승, 복승, 쌍승, 연승, 복연승, 삼복승 등 6가지)

한 번에 경주로에서 뛰는 말의 숫자는 10마리 내외 정도이지만 순서상관없다고 하더라도 1등과 2등 두 마리를 모두 맟추는 것은 너무 어렵다

그래서 난 1등 한 마리 맞추는 데 관심이 더 있다.

 

 

√ 출발대에 진입하기 전, 준비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력마에 걸자니 배당이 너무 낮고, 높은 배당을 노리자니 1등할 확률이 너무 없어 보이고, 그래서 12마리 모두에 아무나 1등 하라고 다 걸었다. 한 마리당 3천원씩 12마리 36,000원을 투자했다.

1인당 마권구매한도는 10만원이다.

 

 

√ 배당판을 보니 우승유력마는 12번이다. 배당은 1.8, 얘가 1등으로 들어 오면 완전 망한다

한 마리에만 걸어야 결승전 직전에서 짜릿한 기분을 맛 볼 수가 있는데, 다 걸어 놓으니 별 기대감이 없다. 주변에 사람들을 보니 두꺼운 경마예상책자를 엄청 열심히 공부들을 하고 있다.

근데 어짜피 경마투자는 정확하게 말해서 투자가 결코 아니다. 계속 하게 될 경우 결국에 가서는 손해를 보게 되어 있는 확률과 환급률게임이다. 귀신이라도 만나서 다음 경주를 미리 볼 수 있는 방법이라도 있다면 모를까? 때문에 난 공부 절대 안 한다. 내가 공부해서 될 정도라면, 진짜 경마전문가들은 금방 부자가 될 것이다.

놀러를 왔으니 아무거나 그냥 산다. 혹시 요행으로 고배당 맞아 돈을 벌게 되면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고, 손해보면 그래도 또 저녁에 한 잔 하면 된다. 어짜피 술들 한 잔 하자고 모인 모임이니 상관없다.

배당판을 보니 모든 말 번호마다 돈이 다 걸려있다. 사지 않은 말이 하나도 없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 전광판 화면 중앙에 말들이 출발대에서 출발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 순간에 긴장하는 건 기수들이 아니라 돈 건 사람들일 것이다

 

 

√ 3층에 올라 내려다 보니 저 멀리서 말과 기수들이 코너를 급하게 돌고 있다

말 뛰는 뒷 쪽 경주로에는 뿌연 먼지가 일어 난다.

말이 경주로에서 달리고 있는 동안 결승선 통과 전까지는 돈을 건 모든 사람들은이 아마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게 싫어서 난 이런 스트레스 받는 게임들은 잘 안 한다.

잘 안 한다가 아니고 거의 안 한다. 말은 뛰는 거 보는 재미라도 있어서 이날 오긴 왔지만 다른 것들은...

 

 

√ 드디어 선수들과 말들이 결승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거리에서 마지막 승부를 겨루고 있다.

말 뛰는 것 실제로 안 본 사람들은 말이 얼마나 잘 뛰는 지 실감을 못할 것이다.

볼 수록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큰 육중한 몸둥이로 살벌할 만큼 달려가는 경주마의 모습은 정말 대단하고 시원스럽다

또 사람의 지시를 받아 언어도 대화도 안 통하는 말이 어떻게 달리기 경주라는 것을 알고 저들끼리 달리기 시합을 하는 건지 정말 신기하고 기특할 따름이다. 닭 대가리하고는 분명 차이가 있다

 

 

√ 경마투자 결과는 손해가 났다. 다 걸었으니 안 맞을리 없는데, 최고 우승 유력마가 1등을 해 버리는 바람에 밥 값도 못 건졌다. 매 경주는 약 30분마다 한 번씩 하는데, 이거 기다리는 게 너무 지루하다

결국 함께 갔던 사람들도 있기 너무 지루하다 해서 예매를 하고 서둘러 서울로 돌아 왔다

다들 예매니만큼 1등으로 들어 올 가능성이 없는 말들에만 돈을 걸었다.

경주가 지나고 나면 스마트폰으로도 확인이 된다고 한다. 난 해 보지는 않았다.

전철을 타고 서울로 향하는 길이 왠지 모르게 기대감에 차 있다.

마치 로또복권 사고 토요일 저녁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이라고나 할꺄

로또에 비교할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서 전철에서 내려 로또복권도 또 샀다. 다 함께..

그리고 이날 저녁은 막걸리에 취해 뭐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해 볼 생각도 깜빡, 술과 함께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을 맞았다

 

 

√ 경마공원에서 전철로 한 정거장 더 가면 바로 서울대공원이다.

어느 곳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이는 지는 모르겠다.

대공원이나 경마공원이나 사람 많기는 매 한 가지인 것 같다.

경마공원은 남자들이 많고, 서울대공원에는 아이들과 여자들, 연인들이 많다

집안의 가장들은 경마공원에 돈 벌러 가고, 다른 가족들은 공원으로 놀러 가는 것 같은 양상이다.

뭐가 됐든, 집안의 가장들인 남자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 미혼이고 가장이 되어 본 적이 없어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버지들은 참으로 대단한 존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돌아가신 내 아버지도 그랬듯이..

 

 

√ 매주 경마일은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이다. 예전에는 금요일은 없었는데, 부산경마가 생겨서 금요일에 시행한다고 한다. 서울경마장과 부산경마장은 큰 말들이 뛰고, 제주도 경마는 조랑말(당나귀?)들이 경주를 한다.

조랑말이라서 그런지 별 박진감 같은 건 없다. 그냥 그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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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관심 2013. 8. 2. 23:59

√. 어릴 적 화전민 아버지와 살 던 시절, 가지고 놀았던 새총이다.

 

 

☺ 그 옛날 1970년대, 내 초등학교(단시는 국민학교) 시절 아버지가 화전민으로 살던 때가 있었다. 당연 나 또한 화전민의 아들(후예)로 화전민 생활을 했었는데, 경기도 가평에서 그리고 청평 인근 산에서, 가평 현리 쪽 한얼 산 중턱에서 등등 이곳 저곳 이동해 다니며 그렇게 산 속에서 살았었다.

이때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새총 만드는 방법이다.

화전민들이 사용하던 새총은 일반 문방구에서 아이들에게 장난감 정도로 판매하는 고무줄 한 가닥짜리가 아니다. 새총으로 말하자면 전문가용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당시에는 애기 기저귀 고무줄이 없어서 대신 고무장갑을 칼로 일정한 넓이를 잘라 그것으로 새총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얼마 전 만들어 본 위 사진의 새총은 고무줄이 두 겹으로 그 위력이 상당하다.

화전민들이 가꾸어 놓은 화전 밭이 언덕(경사)이 심하고 일일이 돌아 다니며 새(비둘기)를 쫒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멀리까지 돌맹이를 날려 새롤 쫒을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 화전민들의 아이디어에서 이 고무줄 두겹짜리 새총이 만들어 진 것이다.

작고 동그란 잘 생긴 돌맹이를 넣어 힘껏 당겨 돌을 날리면 약 300미터 정도 까지도 날아 간다.

산 아래 또는 위에 서서 여기 저기 동서남북에 있는 화전 밭의 비둘기들을 쫒기에 아주 요긴한 물건이었다. 나 역시도 비둘기 많이 쫒아 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만지다 보니 새총의 달인이 되어 작은 참새도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이 됐었다.

 

비둘기는 화전민들이 주로 농사짓는 콩 밭에서, 봄에 콩 싹(콩나물 대가리)이 처음 나오기 시작하면 이 새들(특히 비둘기)은 열심히 하루종일 이 콩나물 대가리를 다 잘라 먹어 버린다. 방치해 두면 아마도 하루 정도면 떼로 몰려와 그 넓은 화전 밭의 콩 농사를 초토화 시켜버리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래서 화전민들에게는 다른 무엇이 아닌, 비둘기들이 가장 무서운 존재 중에 하나이기도 했었다.

옛 생각이 나서 새총을 만들어 보았는데, 마트에 가니 아직도 기저귀 고무줄을 판매하고 있다.

일회용 기성품 기저귀만 쓰는 줄 알았는데, 아직 오리지널 옛날 하얀 천으로 된 아나로구 기저귀를 쓰기도 하는 모양이다.

 

분위기 좋은 까페 같은 곳에 소품으로 걸어 놓으면 딱 맞을 것 같다.

, 추억이란 게 뭔지.. 사람들은 그리고 나도 추억 속에 뭍혀 사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어떤 때는 아예 추억 때문에 사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어려웠던 사람은 어려웠던 때를 떠올리며 감사해 하면서, 행복하고 즐거웠던 사람은 또 그때를 생각하며 지금의 어려운 시간들을 이겨나가기도 하고, 과거가 없는 현재가 존재할 수 없는 것 같다.

마치 사람의 뿌리(근본)를 가지고 사는 것 처럼, 이미 지나간 시간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장 지나간 시간들이 그리고 그 일들이 나를 살아 게 할 수 있는 원인과 목적 그리고 힘이 되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이다.

 

1975년 내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3학년 다니던 시절, 전국의 화전민들은 산으로 부터 철거되었다. 나라에서 돈을 주면서 마을로 내려가 살라고 하는 거였다. 고 박대통령의 산림녹화사업이 시작된 게 아니었나 싶은데, 아마도 그랬던 것인지.. 아무튼 정확하지는 않다. 그랬던 것 같을 뿐..

그런데 당시 일부 지역, 계곡 근처 등에 살았던 몇 몇은 마을로 내려가지 않고 정부로부터 일정량의 토지를 헐값(당시에는 평당 100원짜리 땅도 많았음)에 매입해서 그냥 눌러 앉아 살게 된 사람들도 아주 희박하게 나마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 내가 알던 한 사람이 바로 그런 경우의 화전민 후예로서 가평 어느 한 계곡에서 화전민 아버지의 산속 계곡땅을 물려 받아 지내오다가 지금은 그의 후예(가족, 자식, 손자들)들이 여름 휴가철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유명 펜션계곡에서 여유있는 경제적 안정을 누리며 살고 있다.

조상들은 고생을 했지만 후세들은 오히려 잘되었다. 우리 아버지는 그런 복도 안 남겨 놓으셨다. 지금 거기 땅 값이 무서울 정도다. - 109 - sotktjf dlatlrmf tktjfgate7

posted by 존재의 의미 오만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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